많은 사람들이 ‘주 예수를 믿으라’ 외치고, 방방곡곡 십자가 탑이 하늘을 찔러도 사람들이 냉담 하는 이유에 대하여 필자는 그들에게 들려지는 하나님이 아니라, 보여지고?만져지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선교도 좋고 사명도 좋지만 무엇보다 먼저 기독교의 정체성을 정립해야 한다. 기독교의 생명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그 생명의 뿌리를 든든히 하고 생명을 풍성히 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생명이 풍성하면 때를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에 필자는 ‘교회에서 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안 되는 것을 억지로 한다든가? 안되면 되게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세상적인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오래 가지도 못하고 되는 일도 없다. 교회가 생명력이 넘치면 어디로 가겠는가? 자연히 선교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며,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 자녀들이 건강하고 성숙하고 힘이 넘치기를 바라는 것이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라”는 것이다. 아들이 병들어 위태로운데 무슨 공부며, 선행을 바라겠는가? 먼저 건강하기를 바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먼저 교회가 성령이 충만하여 영적인 힘이 넘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며, 좋은 결실이 맺어 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오래된 교회일수록, 신앙생활의 년수가 많은 그리스도인 일수록 성령의 역사보다는 인간의 책임을 더 강조한다. 이미 신앙이 성숙되고 영적인 힘을 지니고 있음을 전제하고, 이제는 책임을 다하라는 쪽으로 나가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으니 하나님 나라 원리에 맞게 예수님께서 보여준 삶의 모범을 따라 실천하라고 하는 것은 당연한 말이요, 반드시 강조되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문제는 신앙의 년조가 오래 되었다고 하더라도 영적인 능력이 비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화초에 매일 매일 물을 주고 가꾸어야 하듯이 매일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은과 금을 몇 푼 주어서 동정하지 않았다. 만일 그날 자기 생활비를 몽땅 털어서 거지에게 주었더라면 베드로는 성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은과 금은 내게 없다고 하면서 예수 이름으로 일어서서 걷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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